[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아마도 해방 이후 처음 나온 ‘신문전서’가 아닐까 싶다. 1959년 학원사가 발행한 책 제목인데 신문 경영에 관한 글 가운데 하나가 조선일보사 브랜드토토부장 홍우백(洪佑伯)의 기고문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의 첫 부분에 ‘갓이나 망건이나 댕기나 사시료’라는 제목이 있고 삽화가 있다. 갓을 파는 상점과 주인 그리고 <이조 말기의 거간(居間)이란 제목과 갓 쓴 체통 크고 풍채 좋은 거간의 그림이 있다. 뒤에는 포전(布廛)이란 간판이 보인다. 면포로 만든 제품을 파는 상점 포전에서파는 제품 가운데는 갓 따위도 있다. 거간이란 그 한문 글자처럼 상점과 고객 사이에서 매매를 거래하는 이를테면 판매인, 세일즈맨이다. (가격은 다다익선이므로 비싸게 팔수록 거간의 커미션도 늘어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업을 제일 끝에 두었기 때문에 상업이나 브랜드토토가 현저하게 발달되지 못하였다고 하겠습니다.
옳은 말이다. 1894년 갑오경장까지 양반은장사를 못했으니, 이해가 된다. 뒤이어 홍우백은 조선 시대에 흔히 말하는 육의전(六矣廛), 또는 오방재가(五房在家)나 육주비전(六注比廛)이라고도 부르는 6가지 주요 제품 상점을 간단히 설명하고(표 참조) 거간이 하는 일도 소개했다. 홍우백 부장이 훌륭한 것은 이 육의전 가운데 하나인 포전(布廛)과 거간의 그림을 그린 일이다. 역사책을 보면 육의전에 관한 글은 엄청나게 많은데, 정작 그 상점의 그림은 매우 드물다. 20세기 초에 서양 사람들이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을 뿐이다. 특히 1876년 한국의 개항과 뒤이은 20세기 초의 기록은 거의 모두가 서양인이거나 일본인의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림은 아니나, 글로 된 기록 가운데 ‘사람의 냄새가 나는’ 그런 이미지가 담긴『한양가』라는 기록이 있다. 2003년부터 <한국어 세계화재단이 <100대 한국 문화유산-78로 출판한 강명관의 『한양가』에는 그가 말한 ‘사람의 냄새가 나는’ 글이 있다.


큰 광통교 (廣通橋) 넘어서니 육주비전 (六注比廛) 여기로다.
일 아는 열립군(列立軍)과 물화 맡은 전시정(廛市井)은
큰 창옷에 갓을 쓰고 소창옷에 한삼(汗衫) 달고
사람 불러 흥정할 제 경박하기 측량 없다.
광통교는 지금 서울의 을지로 입구에서 종로 네거리로 가는 길 청계천 위의 다리로육주비전(六注比廛) 상점이 있는 장사 중심지였다. 열립군(列立軍)은 상점 앞에 서서 손님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고 상점 주인(전시정)으로부터 삯을 받는데 그 흥정하는 모습이 경박하다는 것이다. 주치막이라 하는큰 창옷은 벼슬하지 않은 선비가 소창옷 위에 덧입는 옷이다. 한삼은 손을 가리는 긴 소매이다. 꼭 드러맞는 그림은 아니나 홍우백이 그린 열립군 그림에서 짐작하는 길밖에 없다. 열립군이란 원래 말이 <여리꾼인데 한문으로 바꿔 쓴 이름이다.

해방 전 1930년대 신문브랜드토토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브랜드토토비 수입이나 신문 브랜드토토 등은 한국 브랜드토토사(신인섭, 서범석 공저)에많이 나와 있다. 홍우백은 원래 경복중학교(제2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그림 솜씨를 인정 받아많은 수상작을 남겼다. 그의 업적은 브랜드토토보다 미술 부문에 더 알려져 있다. 을유문화사의 로고는 그가 남긴 작품중 하나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까짓 거간과 갓 장사 일러스터레이션 하나 할는지 모르나 수많은 육의전(육주비전)에 관한 연구 가운데 상점의 일부 그림은 이것뿐임을 생각하면 브랜드토토계대선배 홍우백(1906-1982)이 남긴 소중한 유산이다. 아울러 강명관 교수의 책, 『한양가』에서 언급한 말 “한양가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상업사의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말은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신인섭(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