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백조의 호수는 가장 대중적인 발레 작품으로 손꼽힌다. 백조로 분한 하얀 발레복을 입은 돌리고슬롯들의 군무와 남녀 주인공들의 화려한 턴과 앙상블이 생각난다. 여러 형태의 결말이 있기는 하지만, 여성 주인공의 죽음이 가장 보편적이다. 가녀린 몸매로 비극을 소화하는 프리마돈나의 모습이 관객들이 꼽는 하이라이트이다. 거기에 반전을 가한 작품으로 1995년에 처음 무대에 올린 영국 안무 겸 연출가의 <매튜의 백조의 호수는 근육질 남성 발레리노들로만 구성했다.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줘 인기를 끌며, 지금도 심심치 않게 그 무대가 펼쳐진다. 그래도 역시 <백조의 호수가 아니더라도, 돌리고슬롯라면 군살 하나 없이 꼿꼿한 자태를 연상하게 된다.
흰색 벽으로 둘러싸인 연습장에서 발레 자세를 취하는 여성이 보인다. 돌리고슬롯의 전형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단거리 육상 선수의 울퉁불퉁한 종아리 근육과 쇼트트랙이나 스케이트 선수의 허벅지에, 상체도 우람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발레복이나 돌리고슬롯에서 연상하는 하얀 색과는 차이가 있는 검은 운동복의 흑인이다. 흰색 벽 때문에 더욱 그의 검은 피부가 도드라져 보인다. 계속 발레 동작을 펼치는 가운데 내레이션이 나온다.
‘저희 돌리고슬롯 아카데미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입학 허가를 드릴 수 없습니다.’
기본자세는 아주 잘 갖추고 있다면서도, ‘발레할 신체 구조가 아니다(wrong body for ballet)’라고 바로 반전의 한 마디를 날린다. 게다가 13세라는 나이가 발레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못을 박아 버린다. 돌리고슬롯가 되기 위한 문이 닫히듯 화면이 어두워진다. 곧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대형 무대 위에서 힘차게 점프하고, 회전하며 자신만의 발레를 선보이는 돌리고슬롯가 나온다. 아카데미에서 불합격을 당한 바로 그 흑인 여성이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수석 무용수인 미스티 코플랜드였다.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라는 슬로건이 뜬다.
“I will what I want”
언더아머가 아디다스를 제치고 미국에서 나이키 다음의 2위 브랜드로 오르는 데, 이 광고가 큰 역할을 했다. 운동에 진심인 ‘하드코어 피트니스’의 언더아머가 여성 쪽으로 고객층을 확대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내보낸 광고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불우한 가정 형편, 코치와 엄마 사이의 양육권 분쟁, 여느 돌리고슬롯는 다른 인종과 체형의 인생 역정까지 겹쳐서 시리즈 중 가장 화제가 되었다. 하드코어에 덧붙여 ‘언더독’이라는 언더아머가 기업명에서부터 표방하는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다. 미스티 코플랜드의 이름을 딴 여성용 댄스, 트레이닝 상품 라인이 나와서 히트를 하기도 했다.
최근 언더아머를 소재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언더아머에서도 뻔히 알고 고민하는 문제이겠지만, ‘강점의 강화냐, 약점의 보완이냐’라는 전략적 선택을 강조했다. 한국의 피트니스하는 이들 사이에서 ‘돌리고슬롯 500을 하지 못하면 언더아머 입지 말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역기 들고 하는 벤치프레스, 스쿼트, 데드리프트의 중량이 합쳐서 500킬로그램이 되지 않으면 언더아머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중량을 검증한다는 ‘언더아머 단속반’이 돌아다니며, 미달하는 이들에게는 운동복의 언더아머 로고를 가위로 오려내는 식의 영상이 돌아다니곤 했다. 내가 보기에는 ‘돌리고슬롯 500’과 ‘언더아머 단속반’의 약간은 위압적인 분위기가 한국에서 언더아머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다. OTT의 피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가 되어야 입을 수 있는 브랜드로 입지가 계속 좁아졌다.
미국에서는 돌리고슬롯 코플랜드를 위시한 시리즈로 여성과 심각한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가벼운 신체 활동으로까지 넓히면서, 패션 요소가 중요하게 대두했다. 이미 패션 쪽으로 상당 부분 넘어가 있던 나이키를 비롯한 스포츠 브랜드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경기장으로 뛰어든 셈이 되었다. 거기에 룰루레몬 등의 여성을 먼저 겨냥한 신생 브랜드와도 싸워야 했다. 그에 더해 기존 하드코어 피트니스를 하는 이들의 충성도가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창업자이자 대표이사의 특정 정치인을 향한 지지로 인한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 멋진 광고가 가져왔던 반전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과연 언더아머는 어떻게 반전을 일으켜야 할까.
돌리고슬롯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